<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만드는 경영·기술 전문지 기업나라 12월호>
출처 : 글 박창수 기자, 사진 김윤해 기자
못 뚫을 시장은 없다
씨알푸드 이상범 대표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말이 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제품 중심의 시장에 진출할 때 흔히 비유하는 말이다. 이상범 대표는 계란의 껍질과 성능은 물론이고 치는 방향까지 달리하면 얼마든지 바위도 밀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3년 전 외국계 대기업이 주도해온 시리얼 시장에 도전장을 낸 씨알푸드는 이제 다수의 자체 브랜드 제품 확보와 함께 해외 시장에도 진출하면서 성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틈새시장 공략과 기술력 강화 그리고 정도 경영을 추구해온 이 대표만의 경영 전략이 통한 결과다.
"목표가 크면 성공도 크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꼭 제조업 창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쉰 살이 되었을 때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 준비에 들어갔어요. 정해놓은 아이템도 없었어요. 단 하나 분명했던 것은 1,0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씨알푸드 이상범 대표의 창업 도전은 돈키호테식이었다. 신용보증기금, 벤처캐피탈 등 금융 업계에서만 25년간 재직하다가 벤처캐피탈 부사장직을 끝으로 퇴직한 그였다. 그러니 누가 봐도 위험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창업 아이템을 찾고 있던 그에게 외국계 식품기업 공장장 출신이던 한 사람이 찾아와 시리얼 사업을 제안했다. 젊은 시절 아내가 아이들에게 시리얼을 먹이면 “그런 걸 왜 먹여! 밥이 보약이지”라며 관심조차 없던 제품에 호기심이 갔다. 8개월 동안 직접 발품을 팔면서 시장조사를 한 결과, 외국계 기업 두 곳이 내수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도전장을 냈다. “생산은 자신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있고, ‘일단 만들어 오기만 하라’는 대형마트가 있으니 달려들었죠. 2007년 9월에 회사를 설립하고 부지를 매입하고 설비를 구축해 시제품을 만들었어요. 그때는 희망이 눈앞에 와 있더라고요.” 2009년 1월에 막상 양산에 들어가니 상황은 달라졌다. 시리얼은 1차 가공한 원재료를 증자(찌는 과정), 건조, 압착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가장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는 단계가 건조다. 온도, 압력, 시간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증자된 재료들이 서로 달라붙지 않고 분리되어 압착 시 양질의 제품이 탄생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우유에 제품을 혼합했을 때 적당히 씹히는 맛과 함께 기분 좋게 부드러워야 하는데, 실패였다. 일본에서 전문가를 초빙해 기술 지도를 받으면서 설비를 해체시켜 다시 조립하고 시운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결국 그해 7월이 돼서야 제대로 된 제품이 생산됐다. “제품이 나오던 날 유통회사 담당자를 찾아갔어요. ‘진짜 만들어 오셨네요’ 하면서 깜짝 놀라더군요. 바로 OEM으로 PB상품 유통을 뚫었어요. 그때까지 꽉 막혀 있었던 제 마음도 뻥 뚫리더군요.”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매출이 발생했고, 거래처가 늘어나면서 매출은 날개를 달은 듯 상승했다. 유통 업계에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제조기술에 대한 장벽이 높았음은 물론이고 유통시장에 뛰어드는 것마저도 외국 기업들이 장악하던 상황이었으니 신생 중소기업의 도전은 언감생심 그 자체였다. 2017년에 매출 170억 원을 기록하면서 씨알푸드는 코넥스에 상장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니었다. 자기자본 5억 원으로 사업에 뛰어든 이 대표로서는 그때까지 묵묵히 믿고 지켜봐준 창투사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대기업들도 겁내던 시장이었는데 제가 해냈거든요. 사실 뿌듯했어요. 창업 당시 목표한 매출의 2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목표를 크게 세우면 얼마든지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OEM과 니치마켓 통한
우회전략이 통했다"
씨알푸드는 현재 주력제품인 식사대용, 체중조절, 기능성 시리얼 70여 종을 비롯해 간식용 바 40종, 쌀쿠키 10종 등 총 120여 종의 제품을 생산한다. 30여 개 국내 유통회사에 PB 또는 OEM으로 납품하고, 미국, 일본, 캐나다, 러시아 등 10여 개국으로 수출 중이다. 제품 중 10여 종은 자체 브랜드로 판매된다. 특히 이 회사가 개발한 ‘바’는 먹을 때 입 안에 달라붙지 않는 차별화된 기능과 식감을 발휘한다. 처음부터 이 같은 유통 채널 다변화와 제품 종류의 다양화 그리고 차별화된 기술이 이루어졌을 리는 만무하다. 이 대표의 시장 공략법은 우회전략과 기술력이었다. “신생회사가 대기업과 경쟁하면 백전백패라는 걸 모르는 경영자는 없습니다. 방법은 경쟁을 피하는 시장을 찾고 그 과정에서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을 키워나가는 것이죠.” 씨알푸드는 지난 2017년까지만 해도 자체 브랜드 상품이 없었다. 이마트 PB상품을 시작으로 군납과 급식시장 같은 틈새시장을 뚫고 암웨이 같은 외국 기업 OEM 제품에 주력했다. 그의 이 같은 시장진입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시장에서 직접적인 경쟁을 하지 않으면서도 해마다 생산량과 매출을 늘려나가는 지름길이 됐다. 이마트, 롯데마트, GS25, 농협하나로마트의 PB상품, 암웨이, 메트로, 자이언트 등의 외국기업 OEM 수출, 군납과 급식 조달시장 등 120여 개의 다양한 거래처를 개척했다. 특히 군납은 씨알푸드 생산현장에 대한 대외적인 신뢰와 품질의 우수성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해냈다. 최근 들어 방위사업청이 피복, 급식 등 군용물자의 품질을 높이고, 민간기업도 입찰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적격심사 기준’을 개정해 조달 방법을 ‘구매 방식’으로 바꾸고 필수 요구사항만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군납 업체뿐만 아니라 민간 업체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있다. 그래도 식품은 장병이 먹는 음식인 만큼 ‘구매요구서’가 제시하는 깐깐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군납은 원료와 첨가물 품질은 물론이고 제조현장의 위생이 그야말로 완벽해야 합니다. HACCP 인증 홍보 동영상 일부를 우리 회사에서 촬영했을 정도니까 위생 기준은 자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인정받기까지는 설비와 관리 그리고 교육에 돈을 아끼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노력이 필수였죠.” 식품제조 회사로서는 가장 중요한 위생과 안전에 대한 신뢰가 확보된 만큼 새로운 거래처를 끌어안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회사를 방문하는 취재진이나 거래 계약을 앞두고 심사를 나온 관계자들이 생산현장을 보고 격찬을 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구, 경영분야
우수 인재를 확보했다"
이 대표는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과감성과 단호함이 돋보이는 CEO다. 그가 지난해 말 전문경영인 체제로 경영 전략을 바꾼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씨알푸드는 2019년 10월에 김진영 전문경영인을 영입했다. “2년 전이었습니다. 창업 후 10여 년을 되돌아보니 ‘어찌 어찌 살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그간의 결과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줄 수 있을 정도지만, 중요한 것은 미래였습니다. 최근 3년간 매출이 정체현상을 보여 돌파구를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지속경영과 성장을 위해서는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했죠.” 이 대표는 창업 후 주력해온 PB와 OEM 전략이 성공적이긴 했지만, 비전을 위해서는 자체 브랜드 시장 진출이 필수라는 것을 실감했다. 제품의 차별화와 안정된 시장 지배력 구축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연구소 인력 확보였다. 연구소는 초기에 일찌감치 설립했지만, 우수인재 확보를 위해서는 서울로의 이전이 시급했다. 지방에 위치해 있어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인재가 오질 않는다는 것을 이미 뼈 아프게 경험하고 있었던 터였다. 이에 따라 2018년 서울시 송파구에 자리한 현대지식산업센터로 연구소를 이전시켰다. 품질관리 인력은 제천 본사에 그대로 남기고 이곳에서는 R&D 전문인력을 채용했다. 연구소장을 비롯해 석사 4명, 식품기술사 1명 등, 총 6명이 신제품 개발에 집중했다. 이어서 이 대표가 스스로에게 칼자루를 꺼내 든 것이 바로 전문경영인 영입이었던 것. “저도 전 직장에서 부사장으로 일했지만 제조업 경영은 처음이었고, 자체 브랜드로 시장 경쟁을 벌여야 하는 마케팅 분야에서는 더더욱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실무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판단했죠. 지금 생각해보니 현명한 선택이었어요.” 김 전문경영인은 취임 후 마케팅 조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당뇨환자용 기능성 제품을 개발했고, 시리얼과 바 10여 종을 자체 브랜드로 출시했다. 마케팅 경력이 풍부한 인재이기에 거래처 다변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올 들어 코스트코와 홈플러스가 신규 거래처로 등록됐다. 그의 경영 전략은 이 대표가 그간 놓치고 있던 아쉬운 부분을 보완해주면서 기대 이상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이 대표는 “나 스스로 나를 쫓아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그야말로 경영의 고수다.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는 제조기업의 CEO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나만 따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능력만 고집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냉정한 판단과 과감한 선택을 통한 비움의 경영철학이 숨어 있었다.
"국가, 직원, 환원
경영철학이 분명하다"
씨알푸드 제천 공장의 이 대표 집무실엔 눈에 띄는 액자가 있다. 회사의 경영 이념이 적혀 있는 액자다. “정성껏 식품을 만들어 국가와 민족에 이바지하고 정직, 성실하고 창조적인 인재를 양성한다. 기업의 이익은 회사를 키워 일자리를 늘리는 데 쓰고 정직하게 납세하며, 남는 것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한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듯한 문구다.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가 생전에 표방하고 실천한 기업 경영 이념과 같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는 벤치마킹한 경영 이념을 실천으로 보여준 경영인 중 한 사람이다. 신제품 개발에 국산 보리와 유기농 재료는 물론이고 홍삼과 제천 지방의 유명 약재인 황기 등의 원료를 사용하는 것과 전문경영인을 취임시킨 점이 그렇다. 또 회사의 성장에 따라 지역민들을 대거 채용해 높은 연봉과 직원 복지를 실현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청년고용우수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씨알푸드에는 10년 이상의 장기 근속자가 많고, 일부 직종에서 장애인 고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 회사는 지금 성장기를 거쳐 도약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자체 브랜드 신제품 확대와 해외시장 진출 등으로 내년에는 3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며 코스닥 상장의 문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처음에 제가 목표한 매출 1,000억 원대 회사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은 더 굳어졌습니다. 다만 우리는 매출의 성장만이 아니라 우리의 경영 이념과 철학에 부합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에 변함이 없습니다.” 회사의 향후 성장과 비전에 대한 바람을 전하는 이 대표에게는 분명한 한 가지가 있다. 정도 경영의 길을 추구하는 기업인이 갖춰야 할 소중한 가치철학, 즉 씨알푸드의 경영 이념이다. 씨알푸드는 지금 사회가 박수 치는 기업, 존경받는 경영인의 길을 향해 열심히 질주하고 있다.
이상범 대표가
2030 CEO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상상력을 키워라"
꿈을 꾸는 사람에게 희망이 있고, 꿈의 크기에 따라 성공의 크기도 달라진다. 꿈은 상상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상상력을 맘껏 펼치면 미래를 향한 자신만의 디자인이 완성되고 그것은 현실로 이어진다. 큰 회사는 CEO의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한다.
"맷집을 길러라"
전쟁에서의 승리는 50 대 49로 이루어진다. 마흔아홉 번 맞고, 내가 맞은 것보다 한 대 더 때릴 때 이긴다. 경영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수없이 많은 좌절과 실패의 반복 속에서 성장이 이루어진다. CEO의 끈기가 중요한 이유다. 난관과 위기에 부딪혔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발휘하려면 리더로서의 맷집이 강해야 한다.
"좋은 멘토를 만나라"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를 존경하고 그분의 철학을 기업 경영에 벤치마킹했다. 또 기업 경영을 성공시킨 다양한 기업인들의 전기를 읽고 그 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고 있다. 책을 통한 만남이든 현실적인 만남이든, 자신에게 멘토가 되어줄 여러 명의 좋은 인물들을 만나 답을 구하고 힘을 얻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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